80년대를 주름잡았던 KBO 최초의 왕조 해태 타이거즈. 해태 왕조를 이끌었던 투수 하면 단연 선동열을 떠올리실 겁니다. 그렇다면 타자 쪽에서는 누가 떠오르시나요?
콧수염 홈런왕 김봉연, 해결사 한대화, 도루왕 이순철, 많은 스타들이 있었죠. 그중에서도 으뜸은 오리궁둥이 김성한 선수가 아닐까 싶네요. 오늘은 한국판 오타니, 원조 이도류이자 해태와 기아를 승계한 타이거즈의 적장자 김성한 이야기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h3yFkgT9jU
낭만은 아니고... 생계형 이도류의 탄생
김성한은 군산상고 재학시절부터 투타에서 주목받는 유망주였습니다.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그러하듯 동국대로 진학한 후에도 투타를 겸했죠. 하지만 1학년 때 너무 많이 던진 탓에 2학년 이후로는 야수로 전향하며 사실상 투수를 그만뒀습니다.
대학 졸업 후 82년 해태 타이거즈 창단 맴버로 입단한 김성한은 3루수 자리를 노렸습니다. 하지만 선수가 단 15명에 불과했던 초미니 구단, 해태의 김동엽 감독은 그를 투수로 쓸 생각을 했죠. 오타니가 스스로 원해서 만화에 등장하는 낭만적인 이도류의 길을 걸었다면, 김성한은 열악한 팀의 사정상 어쩔 수 없이 투타를 겸업한 생계형 이도류였습니다.
김성한이 투타를 겸업했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들도 타자로서의 업적이 워낙 뛰어나기에 투수로는 가끔 나와 공 몇 개 던진 정도로 아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프로야구 원년 김성한의 투타 성적은 놀라웠습니다.
우선 타자로 타율 3할5리, 13홈런, 69타점, 10도루를 기록하며 타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투수로도 선발, 구원 가리지 않고 등판하며 규정이닝을 넘겼고, 10승 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88을 기록했죠. 팀 내 다승 1위였고, 완봉승과 완투승도 각각 한 번씩 있었습니다.
이때 기록한 한 시즌 두 자릿수 홈런과 승리는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베이브 루스와 오타니밖에 달성하지 못한 진기록입니다. 지금 만약 KBO리그에서 한 시즌에 10승을 거두며 10홈런, 10도루, 3할 타율에 타점왕을 할 수 있는 선수가 나온다면 얼마나 큰 이슈가 될까요?
점차 팀의 선수층이 안정화되면서 김성한은 86년까지만 마운드에 올랐고, 이후로는 타자에 전념하게 됩니다.
오리궁둥이 타법으로 리그를 평정하다
김성한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오리궁뎅이 타법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배트 스피드가 느린 핸디캡을 보완하기 위해 동국대 배성서 감독과 함께, 이 희한한 타법을 고안해 내었죠. 방망이를 일자로 눕힌 건 테이크백을 줄여 빠른 볼을 정확하게 맞히기 위해서였고, 타고난 하체와 엉덩이의 회전력을 이용해 파워를 높였습니다.
김성한은 오리궁뎅이 타법을 앞세워 정규리그 MVP 2회, 홈런왕 3회, 타점왕 2회,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6회 수상으로 이만수와 더불어 80년대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습니다. 여기에 발도 빨라서 KBO 최초 20홈런 20도루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죠.
한일 프로야구 올스타들이 맞붙은 1991년 슈퍼게임에서 한국팀은 일본팀과의 수준 차이를 절감하며 고전했습니다. 그래도 김성한이 도쿄돔에서 훗날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하는 이라부 히데키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내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답니다.
해태에서 기아로, 타이거즈의 승계자
IMF 이후 모기업이 자금난을 겪으며 해태 타이거즈는 주요 선수들을 팔아 치우며 간신히 팀을 운영했습니다. 급기야 2000년을 끝으로 김응룡 감독까지 삼성으로 떠나고 말았죠. 무너져 가는 명가의 지휘봉을 잡게 된 김성한은 남아있는 선수들을 독려했습니다.
사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이해 5월까지도 창단 의사를 뚜렷하게 밝히지 않고 있었는데, 예상외로 해태가 선전하자 전격적으로 팀을 인수하게 됩니다. 김성한 감독은 7월 29일,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적인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자연스럽게 기아 타이거즈의 초대 감독이 되었습니다.
기아는 예전과 달리 모기업의 화끈한 지원 속에서 2002년과 2003년 정규리그를 2위로 마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연달아 미끄러지며 해태 시절의 위용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김성한 감독은 데이터보다 지나치게 감에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았죠. 결국 김성한 감독은 2004년 시즌 도중에 경질되고 맙니다.
지도자 김성한이 선수 때만큼의 업적을 이루지 못했지만, 어려웠던 해태를 잘 이끌어 타이거즈의 명맥을 이었다는 점은
분명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타이거즈의 자존심을 지켜냈던 오리궁둥이 홈런왕, 원조 이도류 김성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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